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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흥사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132.100) 작성일19-03-13 16:34 조회6,2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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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9_도선선생서거81주기에즈음한성명서발표.hwp (4.1M) 138회 다운로드 DATE : 2019-03-13 16: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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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산 흥 사 단 성 명 서
사회통합과 민족화해로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가자.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역사에서 뜻 깊은 의미를 가지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해이다. 1919년 대한독립만세의 태극기와 자주독립의 함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3.1운동 100년과 3.1운동의 성과인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영광과 경축의 사건을 기념하고 재정립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울러 다가오는 2019년 3월10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1주기가 되는 날이다. 흥사단에서 추념하고 기억하는 도산선생은 ‘한국독립운동의 혁명영수’로서 평생에 걸쳐 한국독립운동의 전 지구적 발자취와 대한독립의 그 날까지 끼친 영향을 현재 역사학계에서 새롭게 재평가 하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대한민국 발전 번영의 첫출발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시작되었고, 그 나무의 열매가 오늘날의 강대한 대한민국이 되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아울러 현재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아 덜 알려진 독립운동이지만 최초의 독립선언은 1919년 3.1운동보다 먼저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 또는 <무오독립선언서(戊午獨立宣言書)> 라는 이름으로 그 해 1919년 2월 1일 발표되었으며, 무오독립선언이 실제적으로 3·1 운동의 전초가 되는 독립선언 발표사건이었다.
안창호 조소앙 등이 중심이 되어 1919년 2월 1일 중국 길림에서 만주와 연해주 및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 중인 독립운동가 39명의 명의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고, 이 무오독립선언은 조소앙이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유학생 백관수 이광수 등을 지도하여 2.8 유학생 독립선언을 이끌어 내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서울에서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의 기미독립선언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무오독립선언 연서명 인사들은 대부분이 좌우익을 전부 포함하면서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지대한 업적을 남긴 핵심 지도자였으며, 독립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연서자들이 중심이 되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노령)의 ‘대한국민의회’,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선 한성(서울)의 ‘한성임시정부’ 등의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구체적 독립운동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후 대부분이 그해 9월 다시 모여 통합된 단일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도하였다.
무오독립선언은 한국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본에 대해 결사항전과 강력한 무장투쟁을 선언했으며, 도산선생의 독립전쟁론과 의열단의 항일무장투쟁,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연결되는 육탄혈전으로라도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독립운동 전략과 방법론에 관한 선포였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민중운동에서 찬란한 꽃봉우리 같은 1919년 기미년 3.1만세운동의 성과로 탄생한 국가이다. 지난 100년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100년을 평화 통합으로 펼쳐가야 하는 문명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분열, 분단, 갈등으로 심각한 진통과 사회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 없이 무산됨으로써 남북분단으로 인한 긴장국면과 강고한 국제재제는 여전히 한반도 평화를 옥죄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양극화, 빈부격차 심화 등 고통스런 갈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통합이 필요하나, 노·사·정 사회적 합의는 더디기만 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이기에 이견과 갈등과 합법적 투쟁을 인정하는 체제이지만, 분열과 반목이 너무 심하면 그 사회는 정체하거나 퇴보 혹은 내부적으로 붕괴하게 된다.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의 사회통합, 민족화해, 평화통일을 생각할수록 도산 안창호 선생의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되살려야 한다.
도산 선생은 3.1운동의 성과로 출범한 상해임시정부가 출신지역과 신분, 정치노선의 입장차이 등으로 여러 파벌로 나뉘어 반목 대립하는 와중에 1923년 상해에서 소집된 ‘국민대표회의’가 창조파, 개조파, 현상유지파로 분열되어 합의도출에 실패한 이후에 자신이 평소 주창하던 단결, 협동, 통일, 대동단결론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정치사상으로 대공주의를 표방하였다. 대공주의는 소아(小我)를 벗어나 개인에서 출발하여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공(大公)에 도달하려는 사상이다. 이러한 도산 선생의 대공주의는 이 시대의 이념, 계층, 지역, 세대, 노사,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3의 노선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대통합과 민족화해 및 평화통일을 향한 세계관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대공주의는 한마디로 사(私)보다 공(公)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태도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부정부패는 공과 사를 혼동하면서 사회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먼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여러 무질서와 혼란을 겪고 있다. 만약 도산의 대공주의처럼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투명한 사회, 미래세대 청년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을 우선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문명을 선도하는 문화국가가 될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구한말 독립협회 시절부터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938년 서거 할 때까지 민족의 자주독립과 문명국가 건설을 위해 헌신 봉사하셨다. 도산 선생의 전 생애를 관통하면서 그의 실천을 집대성한 대공주의(大公主義) 사상은 한마디로 ‘개인은 커다란 대공인 민족과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함으로서 자신의 천직(天職)을 성심 성의껏 애기애타(愛己愛他)의 마음으로 책임지고 행동한다’ 라는 일상의 실천지침이다.
부산흥사단은 3.1운동과 4.11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경축하면서, 도산 안창호 선생 81주기 기일을 맞이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오늘 이 성명은 도산선생의 대공주의를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 현실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대한민국 사회통합, 민족화해, 평화통일의 진로를 개척하고자 한다.
첫째, 대한민국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시대정신이 ‘사회통합, 민족화해, 평화통일’ 임을 잊지 말고 적극적 혁신운동과 사회운동을 계속 조직하고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다.
둘째, 새로운 100년 대한민국은 신뢰를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는 투명사회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세째, 새로운 100년 대한민국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의 평등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민주국가 건설을 실현하여, 문화국가로 전 세계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며, 자라나는 미래세대 청소년들을 민주시민과 세계시민으로 양성해야 한다.
네째, 민족 공동체의 이익보다 더 큰 정치적 이익, 이념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 하며, 지속적인 남북화해, 평화통일 운동에 집중한다.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한 정부당국의 합의인 ‘7.4 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인 “자주적 평화적 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남북한 분단과 군사적 대치상황을 점진적이면서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1주기를 맞이하는 부산흥사단 단우 일동은 도산의 대공주의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혼란과 반목의 한반도 분단 상황을 종식시키고, 한국사회 분열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사회통합 사상인 대공주의 확산에 매진하기로 한다.
2019. 3. 9
부 산 흥 사 단 단 우 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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