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TV광고 첫 출연 조정래 작가
KNN방송 광고모델 ‘재능기부’ 나서
20여년전 사할린 방문 기억 못잊어
동포들 생각에 가슴아파 NG내기도
국가가 동포 망각 넘어 아예 버린꼴
민간모금이 ‘정부 관심’ 마중물 되길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조 작가는 “엔지 없이 한번에 촬영을 마치자”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결국 엔지를 냈다. “조국에 잊히고, 역사에 짓눌렸지만, 그래도 그 후손들은 민족혼을 품고 있습니다. 사할린 한인에게…”라고 말하다 카메라 앞에서 잠시 말을 멈춘 것이다. 어쩌면 사할린 동포들의 처지가 떠오르면서 그의 마음속에 한순간 파도가 일었는지도 모른다.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짠한 생각이 듭니다.” 조 작가는 <아리랑> 취재를 위해 1990년대 사할린을 방문했던 때 느꼈던 가슴앓이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조 작가는 그들이 끌려갔던 항구나 노무자로 일했던 탄광 등을 둘러봤고, 생활하던 마을들도 찾아봤다. “징용으로 끌려간 이들이 만든 마을 이름에는 ‘육성촌’도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육성하겠다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은 징용의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우리 민족의 독립’을 항상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조 작가는 당시 그 현장들을 돌아보면서 “일제 때 우리 민족이라면 누군가는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을 대신 당한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아파했다. 그리고 “이 고통을 함께 느끼지 않으면 동포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 작가는 “작가의 소임은 과연 뭘까”라고 여러번 되물으면서 <아리랑>의 상당 부분을 사할린 강제징용 이야기에 할애했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동포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이런 소망을 담은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 소망을 받아들여 실천한 정부는 지금까지 없었다. “국가의 이름만 있지 국가가 아닙니다. 책임져야 할 일을 진정으로 책임지는 정권이 없었어요. 사할린 동포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망각을 넘어서는 것이에요. 그냥 버려버린 것이죠.” 그것은 이 정부가 세월호에 갇힌 학생들을 버린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처지는 ‘역사 속의 세월호’라고 부를 만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러시아 정부가 이들을 존중할 수 있도록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 작가는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반짝 한번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사할린 한인 역사기념관’은 그런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건립뿐 아니라 건립 뒤 운영이 가능한 공간이다. “한인 역사기념관이 살아있는 역사교육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제징용자들의 후손인 사할린 동포들과 조국의 후예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령, 그 둘이 함께 똑같은 대본으로 나누어서 연습을 하고 함께 공연을 올리는 멋진 모습도 꿈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념관 건립 사업을 추진하는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리인수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상임대표인 무원 스님(부산 삼광사 주지) 등과 함께 사할린을 방문한 뒤 사업추진이 본격화되었다고 밝힌다. 무원 스님 등은 사할린 동포단체들과 함께 사할린한인역사기념사업회를 꾸렸다. 본부를 부산에, 지부를 사할린에 두기로 했다. 본부를 부산에 둔 것은 사할린 강제징용자의 70%가 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인연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금운동을 부산·경남지역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4월14일 외교부 산하 법인으로 등록했다. 기념사업회는 총 사업비 30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모금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이렇게 민간이 앞서 나가면 정부도 호응해 나설 것이라는 게 사업회의 생각이다. 민간의 모금사업이 정부가 의미있는 일을 하도록 하는 데 ‘마중물 구실’을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기념사업회는 올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 내년에는 반드시 기념관 건립의 첫삽을 뜨겠다고 밝힌다. 숨을 고른 조정래 작가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사할린 한인에게 우리 역사를 알게 하고, 동포애를 전하는 사업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다립니다.” 사할린 동포들에게 자신의 뜨거운 마음도 전하려는 듯 조 작가의 표정이 온화하면서도 진지했다. 그리고 이번엔 ‘오케이’였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후원계좌 부산은행 442-6320-0(예금주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