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2008년 3월 8일) 존경받는 인물상 수상자 고.운여 김광업 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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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명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03-27 00:00 조회11,3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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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여 김광업 선생의 약력
고. 雲如 金鑛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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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인물상 추천 사유
雲如 金鑛業(1906~1976)은 젊은 시절 島山 安昌浩 先生을 만난 이후 인생에 있어서 선생의 인격(人格)과 사상(思想)에 대해 큰 영향을 받는다. 도산선생의 애국정신과 흥사단 정신을 근본으로 삼으며, 인(仁)과 예(藝)를 몸소 실천하며, 인생의 주안점(主眼點)으로 삼았다.
운여의 사회활동 중 가장 활발한 부분으로 흥사단 활동을 들 수 있는데, 도산사상(島山思想)을 널리 펴는 것을 인생의 사명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연고로 운여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4개월간 옥고를 치르렀고, 15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본경찰에 피검되었으나 1938년 1월에 기소유예로 석방된 후 해방 때까지 감시를 받기도 하였다. 수양동우회는 1926년 설립된 단체로 표면상으로는 도산선생의 사대정신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수양단체였으나 실제로는 독립운동단체로 민족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흥사단의 계열단체였다.
운여는 1963년 흥사단 부산분회를 창립한 뒤 초대 부산분회장을 하였고, 또한 자신의 병원(대명안과) 2층에서 흥사단 일과 단소 마련을 위한 회의를 계속하고, 기금마련 작품전시회를 부산, 마산, 진주에서 3회 개최하기도 하는 등 교회장로로서의 삶에 편협하지 않고 모든 예술과 종교를 초월하며 遊於藝를 실천한 서예가이도 하였다.
아드님의 요청에 의해 1973년 도미(渡美)한 후에도 교회기금과 흥사단기금 모금을 위해 활동했으며, 1976년 작품을 만들다가 새벽에 별세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와 명예를 쫒지 않았던, 도산의 흥사단 정신에 충실했던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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